콘텐츠서비스의 중요성
콘텐츠서비스의 중요성
김형중 고려대 정보경영공학부 교수 [출처] 콘텐츠서비스의 중요성|작성자 정신차렷
봉이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가 바로 선각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휘발유 가격이나 물 가격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 혹자는 3차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물 때문일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
지금은 주파수도 판다. 사이버 머니도 판다. 심지어 사이버 공간도 판다. 또 탄소 배출권리도 판다. 이제 만져지지 않는 것도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소비자들이 휴대폰 통화대기용 음악을 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월 1000원 정도씩 낸다면 1000만 가입자가 서비스를 받을 때 가볍게 1000억 이상의 시장이 만들어진다.
미국 전기ㆍ전자기술자협회인 IEEE의 논문은 이제 거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해 찾는다. 동시 접속자 수에 따라 연간 서비스 비용이 결정된다. 1건 계약에 연간 4000만원이라고 가정하자. 한국에서 100건 계약이 이루어질 경우 이 학회는 40억을 벌어간다.
노트북으로 유명한 애플은 2008년 1월 미국에서 음악 소매시장 1위로 올라섰다. 빌 게이츠는 1989년 이미지 판매회사인 코비스(Corbis)를 창업했다. 구글의 2007년 매출이 240억 달러에 이른다. 콘텐츠 서비스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들이다.
한국에서는 콘텐츠 산업이란 `대장금' 류의 콘텐츠 생산을 의미한다. 좋은 콘텐츠의 생산도 중요하나 서비스는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모나리자 사진을 사용하려면 코비스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회사는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사진 등 중요한 것들을 일찌감치 사재기해두었다.
선진국들은 콘텐츠 서비스의 중요성에 일찍 눈을 떠 미래에 대비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여전히 삽질의 중요성만 강조한다. 생산만이 살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한국은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논문을 양산하는 국가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콘텐츠의 가치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있다.
자신이 쓴 좋은 논문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함부로 게시하지 못한다. 저작권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에 논문을 내면서 홈페이지에 논문을 게시할 수 있는 권리도 사야 한다.
구글은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로 변환하고 있다. 오래된 고서부터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다. 왜? 그게 바로 언젠가는 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소중한 기록들을 자산으로 만들고 그 자산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30년 전 자동차 산업이나 조선 산업은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다. 지금 한국이 이 분야 최고의 강자가 되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30년 후 이들 산업은 중국이나 인도의 몫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30년 후 우리의 먹거리는 무엇이 될까?
정부는 지식 서비스 산업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정확한 판단이다. 그런데 정작 서비스는 뒷전이고 생산만 강조되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매일 수많은 사진들이 쏟아지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덕분이다. 누구나 블로그를 만들고 있다. 전문가가 따로 없다. 이렇게 쏟아지는 콘텐츠들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서비스공학의 몫이다.
엘리트주의도 중요하다. 그러나 민초들의 꾸밈없는 기록들이 이어령을 흥분시켰듯이 우리 주변에는 야생화와 같은 콘텐츠가 넘치고 있다. 다만 그들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안목과 서비스 기술이 부족할 뿐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 계백 장군의 황산벌 전투, 장보고와 청해진, 허준의 의술, 대장금의 간호학이 넬슨, 나폴레옹, 히포크라테스, 나이팅게일에 비해 뭐가 뒤지나? 이들의 행적이 우리에게는 물론이고 새로운 스토리에 목말라있는 서구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보배이지만 그것이 보배이게 만드는 데 우리의 안목과 역량이 부족하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발표 시점이 되면 고은 시인이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과연 온라인에서 그 시인의 시를 쉽게 찾을 수 있을까? 고은 홈페이지에서 시집 번역본 리스트는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의 대표적 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시는 더 널리 더 많이 읽혀야 한다. 그런데 그의 시는 잘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서비스되지 않는 콘텐츠는 죽은 콘텐츠이다. 콘텐츠 서비스에 주목할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