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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O의 경영학적 위치

달팽이1 2008. 8. 8. 00:32
MBO의 경영학적 위치

 

MBO 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경영기법이라고 하지만 그 기원은 행정에서 예산 계획수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기법이다. 사실 미국에서 행정학과 경영학은 그 대상이 정부기관이냐 기업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plan-do-see라는 “관리의 학문”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투명성이나 성과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압력은 기업보다 정부기관이 먼저 겪게 되는데 그것은 예산을 승인하는 의회를 설득하기 위해서 충분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을 계획적이고 효과적으로 쓰고 있으며 그 결과 공공복리(public welfare)가 얼마만큼 개선되었는지에 대한 report는 해당 정부기관이 예산을 따내고 조직을 확장하여 그 위상을 공고히 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물론 20세기 초반의 미국 정부기관도 예외 없이 incrementalism , 소위 점증주의 방식의 예산 편성을 하고 있었다. 전년 대비 10%의 예산 증액. 전년도 하던 사업은 계속. 한 번 사업 승인이 나고 예산이 정해지면 매년 일정 %의 예산 증가를 보장받는 방식이다. 행정의 예측가능성과 공공 서비스의 계속성을 보장한다는 것이 주된 논리이다. 그러나 합리적 예산 편성의 요구는 거세져 갔고 그리하여 처음으로 등장한 예산수립 개혁 기법이 PPBS(planning programming budgeting system)라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계획을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사업계획으로 break down하여 예산 편성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60년대에 MBO(management by objectives)가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아래로부터의 예산편성이라는 대단히 非미국적인 문화요소가 그 바탕이 되어 있는 예산 편성기법인데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사고의 산물이었다. 70년대 카터 행정부 때에 ZBB(zero base budgeting)가 한 때 나왔다. 모든 사업계획을 zero base로 놓고 계획의 타당성을 원점에서 매년 따져보자는 예산 편성 방식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PPBS는 실종되고 ZBB는 증발되어 버렸다는 것이 학자들의 평가이다. 전자는 점증주의를 벗어나지 못했고 후자는 지나치게 점증주의의 반대편에 서는 바람에 비현실적으로 되어 버려 결국 둘 다 합리적 예산 수립 방안으로서는 정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와 중에서 정부기관이 아닌 기업으로 옮겨가서 그 꽃을 피운 것이 바로 MBO. 그러면 그 당시 기업의 형편은 어떠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경영학은 흔히 미국의 독점적 학문으로 생각하지만 20세기 초기에는 역시 모든 학문의 중심지는 유럽이었다. 유럽의 학풍은 특히 대륙 계통은 데카르트의 연역법이 영국과 미국은 베이컨의 경험론적 귀납법이 도도한 학풍을 형성하고 있었다. 기업경영에 대한 연구라는 경영학도 당연히 이러한 계통적 학풍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관리과정론이 미국에서는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흔히 시간 및 동작 연구로 알려져 있는-이 각각 초기 경영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먼저 관리 과정론을 보면 ‘계획하고 집행하고 평가한다’라고 하는 plan-do-see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관리 싸이클 개념-다분히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개념틀-을 사용한 경영학이다. 반면에 미국의 공장 노동자 출신 테일러는 실제로 육체 노동을 할 때 몸의 움직임 팔의 각도 그리고 시간 등을 사실에 입각해서 측정하고 연구하여 가장 능률적인 몸의 움직임 즉 동선을 찾아내는 쪽으로 연구의 가닥을 잡아 나갔다. 이것이 바로 논리실증주의 이며 모델링이자 소위 “과학적” 연구 방법의 효시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유럽의 학문을 과학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철학적 주장 즉 “설”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유럽은 철학적 무지와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내는 뿌리 없는 천출이라고 폄하하는 형편이다.

 

이후에 근대 사회과학의 큰 저수지였던 유럽의 오스트리아 학파의 미국으로의 대거 이주로 명실상부하게 모든 근대학문의 중심지는 미국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의 연역적 학풍과 fact data를 중시하는 영미의 귀납적 학풍은 그 유명한 드러커에 와서 ‘경영과학(managerial:유럽, science:미국)’으로 일종의 통합을 이루게 된다. 참고할 것은 MBO의 기업 전파에 지대한 공을 세운 드러커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후예라는 것이다. 드러커는 1920년대 성장기에 벌써 하버드대의 교수였던 “혁신”의 원조격인 슘페터-혁신에 의한 창조적 파괴와 기업가 정신을 자본주의 경제의 동인으로 강조한를 아저씨 아저씨 하며 자랐는데 드러커의 아버지가 슘페터 교수와는 막역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유럽 이민자들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영학은 크게 보아서 managerial science behavioral science로 크게 대별해 보아야 한다. 후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관계론이 그 대표적인 이론이다.

 

 

, 이제 미국에서의 경영학의 연구 트렌드를 일별해 보도록 하자. 순서는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최초에 그리고 다음에 인간관계론이 그리고 MBO에 이어 각 종 경영혁신이론이 풍미한 80년대로 이어진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매우 아이러니칼한 상태를 겪는다. 실제로 그 자신이 노동자 출신이면서 노동자들의 지위 향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 과학적 관리법을 통해 생산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을 늘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노동자에게 더 많은 부를” 이라는 그의 사상은 그 당시에는 실제로 그를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히게 하였다. 그러나 테일러는 노동자로부터도 왕따를 당했는데 그것은 보다 심각한 철학적 쟁점이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이 보기에 테일러는 하나의 ‘신성한 예술’인 노동과 장인(master)인 노동자를 시간과 물리적 궤도로 난도질 하여 결국 창조적 행위를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노동으로 그리고 드높은 긍지를 가진 장인(master)을 일개 돈에 팔린 노동자로 비하시켰다는 중대한 죄를 저지른 것이다. 실제로 저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같은 일을 기계 대신 반복하게 된 테일러 및 포드 시스템은 오늘날 까지도 인간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노동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능률이 지상 과제이던 미국에도 그에 못지 않은 심각한 도전이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이 다인종 다민족 국가라는 것이다. 이는 공통의 문화적 유산이나 정서 언어 관습 사고방식 등이 없다는 것이고 특히 서로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지극히 익명성이 높은 사회라는 것이다. 이것은 조직이나 국가사회를 꾸려 나가는데 매우 어려운 요소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발달한 학문은 심리학 계열이다. 사회학, 심리학, 사회심리학, 산업심리학, 인류학, 심지어 의학, 생리학 까지도 심리학을 중심으로 학제적 연구를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게는 기업을 크게는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 필요에 의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인간이란 역사적이나 사회적 뿌리를 배제한 단순한 “개인”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국에는 심리학 제국주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 설명을 하는 이유는 다음에 나올 인간관계론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1934년 호오돈 공장의 실험은 전형적인 테일러리즘적 연구였다. 즉 공장의 불의 밝기가 노동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이상한 결과가 나타났다. 불빛의 밝기에 상관없이 능률이 향상되었던 것이다. 무엇이 영향을 미쳤을까? 수수께끼는 간단했다. 연구 실험을 위해 공장에 장기간 많은 사람이 투입되었다. 엄정한 군대 같은 분위기에 눌려있던 블루칼라인 그들에게 교육받은 지식인들이 와서 말을 시키고 자신들의 상태와 의견을 물어보고 관심을 가져 주는 상황이 전개되자 소위 신바람이 난 공장 노동자들이 동기부여 되어 생산성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이듬해 소위 심리학자들을 비롯한 다른 대규모 팀들이 와서 생산 현장에서 비공식적인 인간관계가 생산성에 미치는 본격적인 연구가 장기간 계속되었고 여기서 인간관계론이 탄생하게 되었다.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가 들여다보는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오늘날 복합계 이론 또는 양자역학에서는 상식이지만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발견이었다. 어쨌든 드러커는 인간관계론을 비판하는데 그것은 목적을 가진 조직에서 유일한 동기 요인을 인간관계나 개인의 심리적 상태로 생각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접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관계 자체가 목적인 공동사회와 달리 기업은 목적을 위한 수단적 이익사회이므로 개인을 존중하는 것 조차도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의의가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인간관계론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 지면서 기업의 목적과 개인의 존중을 조화시킬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경영이론으로서 목표관리가 행정학으로부터 차용되어 화려하게 기업경영을 수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놀라운 현실성과 유연성으로 오늘날까지 사실상의 경영규범으로 자리 잡는데 성공했다. 이후의 복잡성이나 불확실성에 따른 시나리오 경영이나 핵심역량 경영 또는 지식경영 등은 이름은 각기 달라도 조직의 목적달성을 위해 경영자와 현장지성인 직원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경영시스템이라는 본질적 측면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다민족 다인종 사회인만큼 철저한 경영자 위주의 조직운영을 한다. 즉 일을 디자인하는 사람과 일을 집행하는 사람으로 명확히 구분되고 이니셔티브는 항상 경영자가 잡는다. 그래서 현장에서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점진적 개선을 이루어가는 일본식 카이젠은 미국에선 큰 효과가 없고 아예 일하는 방식이나 제품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혁신이 화두가 된다. 그런데 목표관리는 이러한 철저한 경영자 이니셔티브에서 한 발짝 양보하여 현장지성을 기업경영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경영과학과 행동과학의 또 다른 접목이라고 할 만 한 것이다.

 

계획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집행할 직원들이 일의 목적과 주요 목표와 전략과 베스트프랙티스를 이해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실제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없다는 경험적 반성에서 계획단계부터 직원들을 참여시키는 방안이 도출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종의 자기 기획서이므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양날의 칼도 무시 못할 점이다. 모든 훌륭한 것들은 다양한 측면을 가지는 것 같다.

 

여하튼 MBO는 경영진의 역량과 계획의 우수성이라고 하는 것과 직원의 열의와 집행이라는 양 측면이 가지는 본질적 긴장구조를 창조적으로 연결한 것이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 연결을 위해 신뢰, 커뮤니케이션, 자기통제와 같은 조직운영의 주요한 원칙들이 동원된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음양의 조화 문제라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한다.

 

독자 여러분은 MBO를 경영자가 직원을 향해 내민 신뢰와 동반의 손이라는 것으로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 그러면 MBO 성공의 전제 조건도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40 MBO는 이후의 모든 경영이론의 발전을 유연하게 흡수하면서 조직운영과 인사관리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진화를 거듭하게 되었다.

 

 

- 휴맥스 사보 <View> 연재